아침이 깨우는구나
오늘은
아침을 대접했다.
어제의 나도 그제의 나도
정신 없이 아침을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훌쩍 넘겼었는데,
오늘의 나는
주홍빛의 동트는 새벽 앞에 나와
땅기슭을 기는 아침에 나를 세웠다.
“크다.”
이 땅,
하늘, 나무들,
새벽을 채우는 공기,
빛,
가만한 바람,
(木)내음,
새소리,
시작의 소음,
차 소리,
발소리,
개 소리,
커져가는 생기력,
밝아오는 세상,
일어나는 원동력.
수백 번도 세상은 이들로 가득찼었는데
나는 왜 오늘에야
이들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걸까?
어제에도 있었고 그제에도 있었는데
왜 어제에는 없신 여겼었고 그제에는 등졌었는지.
왜 오늘에야 비로소 이들을 아침으로 대접할 수 있는 건지.
한심스러운 내 자신에
하늘을 한 번 더 우러러 보는데,
그래서 내가 이들을 아침으로 대접할 수도 있는 건지?
허물
아침을 깨니
내안이 가득하다
목소리들로--
아! 또 시작이구나!
힘겨운 하루. 오늘도 첩첩산중
해야할 일들로 가득찼는데
삶은, 사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래면서
왜 내 삶은 이리도
힘겨운 건가
외로워서 그런건가?
돈을 좀 더 벌면
그러면 달라지려나? 이 삶의 내
무료함도 좀 누그러 질려나.
에이, 정말! 어서 정신 차리자!
이러다 늦겠다.
오늘도
기어들어 간다.
어제에
벋어놓은 삶.
(왜지?)
그냥 벗어버린 채로
(곧게 정렬된 내 계획들
산 밑둥 기슭에
너저분히 널려 놓은 채로
내 꿈과 이상도
지하 장롱속 서랍 구석에
밀어 넣은 채로
남들이 부러워한들
먼지가 앉던 말던
구더기가 생기던 말던
쉰내가 난다해도)
살아도 되건만,
나는 왜 오늘도 나를, 어제의 옛 삶으로 다시 집어넣으려 하는 걸까?
혹시나 (안 입으면) 추울까봐,
모르는 남들이 보면 웃을까봐,
(발가벗었다고?)
그래서 다시 걸치나?
내 허물.
나는
(왜)
오늘도
다시 들어간다.
내가 삶을 사는 이유
누가 나에게, "너는 왜 사느냐?" 고 묻는다면
나는 두
가지로 대답해 주고 싶다.
너무 불가능해서.
웃정어린 사람들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 그 사랑 저버린다는 것
너무 실례 아닌가 싶어서.
여름 장마 내리 듯, 쏟아지는 매일의 하루
오늘도 쏟아지는데, "하루야, 왜 너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그리도 빠짐 없이 매일 매일를 내 앞에 나타나니?"
내 몸에
심어진 생체시계
아침 7시쯤 되면
내 몸 안에서 저절로 작동해 나를 깨우는데
그 힘
이긴다는것 아침 7시쯤 되면
내 몸 안에서 저절로 작동해 나를 깨우는데
너무 불가능해서.
근데, 간혹 내 몸이 말 안들어
그 대자연 조차도 나를 깨우지 못해, 멍히 쳐다만 보면
그땐, '오늘도 잘 살고 있겠지' 하고 당연시 염원하는 그 대자연 조차도 나를 깨우지 못해, 멍히 쳐다만 보면
웃정어린 사람들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 그 사랑 저버린다는 것
너무 실례 아닌가 싶어서.
대자연이
나를 깨우고, 사람 사회가 사랑을
염원하는데
그 힘
피한다는 것, 그 윤리 어긴다는
것!!! 여름 장마 내리 듯, 쏟아지는 매일의 하루
오늘도 쏟아지는데, "하루야, 왜 너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그리도 빠짐 없이 매일 매일를 내 앞에 나타나니?"
그 대답, 이거면 충분할까?
세상
현재의 삶은
나를 언제나
아래의 질문으로 유도케 한다.
아래의 질문으로 유도케 한다.
“도데체 뭐 먹고 살지?”
근데,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철학자로도 만들케 한다.
“내가 왜 사나?”
내가 사는 이 세상
돈 걱정 좀 안하고
밥 좀 쉽게 먹을 수 없나?
밥 좀 쉽게 먹을 수 없나?
철학자는 돈도 못 번다는데
아이들 장난하듯이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고
현실의 삶의
논리
논리
성장
발전에
전혀 보탬이
발전에
전혀 보탬이
될 것도 같지 않은데
묻습니다 사람들이
사회가
그 글 나부랑이는 왜 쓰냐고?
먹고 사는 인간
다 몸을 위해서고
입고 사는 것도
다 살을 위해서라
산다는 것은
현실에 맞춰
최대한
만족하고
타협하며
될 수 있으면 사랑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삶인데.
현실에 맞춰
최대한
만족하고
타협하며
될 수 있으면 사랑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삶인데.
근데,
그 현실
내일에도 꼭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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