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12, 2011

자작시 3번째













아침이 깨우는구나 


오늘은
내가 동트는
아침을 대접했다.


어제의 나도 그제의 나도
정신 없이 아침을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훌쩍 넘겼었는데,


오늘의 나는
주홍빛의 동트는 새벽 앞에 나와
땅기슭을 기는 아침에 나를 세웠다.


“크다.
이 땅,
하늘, 나무들,

새벽을 채우는 공기,
,
가만한 바람,


()내음,
새소리,
시작의 소음,


차 소리,
발소리,
개 소리, 


커져가는 생기력,
밝아오는 세상,
일어나는 원동력. 


수백 번도 세상은 이들로 가득찼었는데
나는 왜 오늘에야 
이들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걸까?


어제에도 있었고 그제에도 있었는데
왜 어제에는 없신 여겼었고 그제에는 등졌었는지.
오늘에야 비로소 이들을 아침으로 대접할 수 있는 건지.  


한심스러운 내 자신에
하늘을 한 번 더 우러러 보는데,
그래서 내가 이들을 아침으로 대접할 수도 있는 건지?















허물


아침을 깨니
내안이 가득하다
목소리들로--
! 시작이구나!

힘겨운 하루. 오늘도 첩첩산중
해야할 일들로 가득찼는데
삶은, 사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래면서
삶은 이리도
힘겨운 건가
외로워서 그런건가?
돈을 더 벌면
그러면 달라지려나?  삶의
무료함도 누그러 질려나.
에이, 정말! 어서 정신 차리자!
이러다 늦겠다.

오늘도
기어들어 간다.
어제에
벋어놓은 .

(왜지?)
    
그냥 벗어버린 채로
(곧게 정렬된 계획들
밑둥 기슭에
너저분히 널려 놓은 채로
꿈과 이상도
지하 장롱속 서랍 구석에
밀어 넣은 채로
남들이 부러워한들
먼지가 앉던 말던
구더기가 생기던 말던
쉰내가 난다해도)
살아도 되건만,

나는 오늘도 나를어제의 삶으로 다시 집어넣으려 하는 걸까?

혹시나 ( 입으면) 추울까봐,
모르는 남들이 보면 웃을까봐,
(발가벗었다고?)
그래서 다시 걸치나?

허물.

나는
()
오늘도
다시 들어간다.











  
내가 삶을 사는 이유 


누가 나에게, "너는 왜 사느냐?" 고 묻는다면
나는 두 가지로 대답해 주고 싶다.
내 몸에 심어진 생체시계
아침 7시쯤 되면
내 몸 안에서 저절로 작동해 나를 깨우는데
그 힘 이긴다는것
너무 불가능해서.

근데, 간혹 내 몸이 말 안들어
그 대자연 조차도 나를 깨우지 못해, 멍히 쳐다만 보면
그땐, '오늘도 잘 살고 있겠지' 하고 당연시 염원하는
웃정어린 사람들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 그 사랑 저버린다는 것
너무 실례 아닌가 싶어서.

대자연이 나를 깨우고, 사람 사회가 사랑을 염원하는데
그 힘 피한다는 것, 그 윤리 어긴다는 것!!!


여름 장마 내리 듯, 쏟아지는 매일의 하루
오늘도 쏟아지는데, "하루야, 왜 너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그리도 빠짐 없이 매일 매일를 내 앞에 나타나니?"


그 대답, 이거면 충분할까?







세상


현재의 삶은
나를 언제나
래의 질문으로 유도케 한다.
 
도데체 뭐 먹고 살지?”
 
근데,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철학자로도 만들케 한다.    
 
내가 왜 사나?”  

내가 사는 이 세상 
돈 걱정 좀 안하고  
쉽게 먹을 수 없나?

철학자는 돈도 못 번다는데





시 쓰는 까닭


현실과 동 떨어져서
아이들 장난하듯이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고
생존경쟁 시대에
경영, 과학, 기술, 앞다튀
전진 하는 이 마당에
현실의 삶의 
논리
성장
발전에
전혀 보탬이
될 것도 같지 않은데

묻습니다 사람들이
사회가
그 글 나부랑이는 왜 쓰냐고?

먹고 사는 인간  
몸을 위해서고
입고 사는 것도
다 살을 위해서라
산다는 것은
현실에 맞춰
최대한 
만족하고
타협하며
될 수 있으면 사랑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삶인데.

근데,
그 현실 
내일에도 꼭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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